정직
「자, 치즈!」
초등학교 입학식. 교문에서 6살의 켄유는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자켓에 익숙하지 않은 넥타이를 매고, 등은 꼿꼿이 세운 채 얼굴은 진지하다. 미용사인 어머니가 막 잘라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조금 겁에 질린 듯 하다.
「어머. 켄유,긴장하고 있어?」
「핫핫하. 괜찮아 괜찮아. 엄마랑 아빠가 보고 있으니까」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처음 다니는 초등학교에 켄유는 기대보다 걱정이 훨씬 컸다.
(친구, 생길까……)
고개를 숙이고 승강구로 향한다.
자신의 새 신발만 보고 있는데, 거기에 분홍색의 무언가가 살며시 내려왔다. 멈춰 서서 손끝으로 집어 보니 작은 꽃잎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학교 정원에 심어진 벚꽃이 봄바람에 꽃잎을 흩날리며 마지막 남은 꽃잎을 흩날리고 있었다.
「아쉽네. 만개했으면 아름다웠을텐데」
누군가의 엄마가 그렇게 말 하며 지나갔지만, 켄유의 눈은 흩날리는 꽃잎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와아……)
다시 바람이 불고, 살랑살랑 꽃잎이 흩날린다.
「켄유?」
어머니의 부름에, 켄유는 서둘러 꽃잎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거리며 교실에 들어가니 모르는 아이들만 있어 더욱 긴장된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아이들도 있지만, 얌전한 켄유는 그 무리에 끼어들지 못한다.
자리에 앉아 머뭇거리고 있으면…….
「있잖아! 이름 뭐라고 읽어? 유, 키, ……」
옆자리에 앉은 남자아이가 켄유의 명찰을 들여다 보았다.
「나……유키미야, 켄유」
「난 토모다 타이치! 잘 부탁해!」
활기찬 대답으로 웃으며 다가온 토모다 타이치 군. 눈썹이 굵고 목소리도 크고 정말이지 장난꾸러기 같다.
(다행이다. 말 걸어줬어)
켄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드디어 어깨에 힘들 뺐다.
「나는 사쿠라바, 치하루라고 해」
그러자 앞에 앉아있던 여자 아이도 옷이 늘어나는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명찰을 내밀었다.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이 무척 밝아보이는 아이였다.
켄유도 마찬가지로 명찰을 그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세사람이 자기소개를 시작한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도 자신의 명찰을 가르키며 「내 이름은……」「나는……」하며 차례로 주변에 모여들었다.
(와아……)
켄유는 즐거워 졌다.
토모다 군이 다시 빙긋 웃었다.
「사이좋게 지내자, 윳키!」
윳키.
「응!」
켄유는 처음으로 불려진 별명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반은 어땠어?」
「즐거웠어! 있지, 옆자리 앉은 아이와 친해졌어!」
「어머, 다행이네」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웃는 얼굴로 보고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도 어머니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얌전한 아이라서 조금 걱정했지만, 새로운 생활을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켄유도 지쳤지. 옷 갈아입고 밥 먹자」
「네」
집에 돌아와 자켓을 벗으려는 순간.
「어라……」
자켓 주머니에 넣었을 그 명찰이 없다. 돌아올 때 어머니가 떼어 넣어 주셨는데,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봐도 없었다.
허둥대며 「명찰이 없어! 어떡하지!」 라고 어머니에게 보고한다.
「어머. 어딘가에 떨어뜨렸구나. 어쩔 수 없지, 새걸로 다시 주문하자」
어머니는 그렇게 말 했지만 켄유는 싫었다.
(그 명찰이 좋아. 그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으니까)
어머니가 이름을 적어 주었고, 모두와 서로 보여주었던 명찰.
켄유는 그것을 정말 소중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나, 찾아올게!」
「잠깐 켄유!?」
갑자기 집을 뛰쳐나간 아들을 쫓아 어머니와 아버지도 다시 학교로 되돌아갔다. 세 가족이 함께 명찰을 찾게 되었다.
간선도로를 따라 깔끔하게 포장된 보도에서는 찾기 쉬웠지만, 초등학교 주변은 밭과 주택가였다. 켄유는 잡초를 헤치고, 멈춰 있는 차 아래를 들여다 보며 필사적으로 찾았다.
학교 운동장도 열심히 찾아 보았지만, 떨어진 벚꽃만 있을 뿐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쪼그려 앉아 찾고 있는 켄유의 머리 위로 꽃잎이 계속 흩날려 떨어져 오늘 하루 사이에 잎이 돋은 벚나무로 변할 것만 같은 기세였다.
집과 학교를 세번정도 왕복하고,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켄유. 슬슬 돌아가자」
역시 부모님도 완전히 지쳐 버렸다.
하지만 켄유는 지면을 샅샅이 살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면 안돼. 그건 하나밖에 없어……)
찾는것을 그만두지 않는 켄유에게 부모님이 얼굴을 맞댄다.
얌전하고 정직하며 착한 아이지만, 한편으로는 한 번 마음먹은 것은 절대로 굽히지 않는 성실하고 완고한 면이 있다.
다시 학교까지 왔지만 역시 찾지 못했다.
「이제 돌아가자. 배고프지?」
「이만큼 찾았는데 발견하지 못했어. 포기하고 새 명찰을 소중히 여기면 되지 않겠니」
아버지가 쪼그려 앉아 찾고 있는 켄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응……」
켄유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슬퍼서 견딜 수 없었다. 울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며, 할수 없이 명찰 대신 지면에 떨어져 있는 꽃잎에 손을 뻗었다.
「아!」
그곳에 꽃잎에 묻혀 있는 명찰이 있었다. 지면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꽃잎에 가려지듯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있어! 있었어!」
꽃잎이 붙어있는 「유키미야 켄유」라고 써진 명찰을 집어들자 눈물이 쏟아졌다. 기쁘다.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신이야. 신이 찾아 주신 거야)
포기하지 않으면 이런 멋진 일이 일어난다.
켄유의 정직함과 간절함이 만들어낸 작은 기적이었던 것이다.
우등생
초등학교에서 켄유는 우등생이었다.
조금 겁이 많긴 하지만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상냥한 아이. 숙제도 제대로 해 오고, 「좋은아침 입니다!」 라고 힘차게 인사한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싸우지도 않는다.
반 친구들도 의지하고 선생님에게도 신뢰받는 인기인.
반장을 정할 때도 토모다 군이 「네! 윳키가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 하자 모두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며 손을 든다. 그 후 졸업할 때까지 계속 반장에 추천받게 된다.
입학한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조금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옆자리에 앉은 토모다 군과 점점 친해져서 방과 후 자주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마리카 하자!」
「응!」
토모다 군의 집에는 세살 연상의 친절한 누나가 있었는데, 과자를 주기도,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토모다 군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였다.
「어라. 타이치 아직 안왔어. 한눈 팔고 있는 걸지도 몰라」
누나가 나와서 그렇게 말 했다.
「먼저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을래?」
「으응……」
어쩌면 다른 아이들과 만나 공원에서 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도 공원에 갈까? 그치만 엇갈리면 곤란한데)
고민하고 있자 누나가 갑자기 켄유의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듯 만졌다.
켄유는 부드러운 곱슬머리였지만 어머니가 항상 멋지게 손질해 주셨고, 누나는 항상 「켄유 군의 머리 스타일, 모델처럼 멋있어!」 라고 칭찬해 주었다.
이렇게 머리를 만지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그 날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누나가 이마에 츄 하고 키스해 온 것이다.
에, 하고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좋아해 켄유 군. 같이 놀자」
눈 앞에 누나의 반짝이는 눈동자. 두근두근 거렸다.
「……나! 공원 가야해!」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른 켄유는 도망쳐 버렸다.
공원에 가지 않고 그대로 집에 돌아가 방에 혼자 틀어박혀, 두근거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좋아해 켄유 군」
잘은 모르겠지만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기쁘다. 하지만 키스 받은 것은 조금 부끄럽다.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자)
켄유는 연상의 조숙한 여자 아이에게 호감을 받을 만큼 단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장이자 이케멘인 우등생.
2학년이 되자 더욱 키가 크고 스포츠 만능이라는 요소가 더해졌다. 키는 쑥쑥 자라서 학년에서도 1,2번째로 키가 컸다.
달리기도 빠르고, 피구에서는 항상 마지막까지 남았다.
그리고 운동회. 체육시간에 시간을 재면 상위권 이었던 켄유는 계주 선수로 뽑혔다. 그리고 마지막 주자를 정하게 됐는데…….
「윳키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말하자 모두가 연이어 동의했다.
「윳키 달리기 빠르고! 길고!」
「반장 부탁해!」
마지막 주자는 계주의 꽃이다. 이런 큰 역할을 자기가 해도 되는걸까? 조금 불안했지만, 부탁을 받으면 열심히 하는 것이 켄유이다.
「알겠어. 모두를 위해 열심히 달릴게!」
운동회 당일 까지 켄유는 매일 달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런닝 하거나, 방과 후 운동장을 질주하거나, 일요일에는 아빠에게 시간을 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어쨌든 성실한 아이였다.
그리고 드디어 반 대항 계주 실전.
맑은 하늘 아래, 첫번째 주자가 출발하자 응원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켄유의 반, 2학년 1반은 최선을 다했지만 허무하게도, 얽혀있던 집단에서 점점 밀려나게 됐다.
켄유가 바통을 받았을 때는 최하위. 선두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고, 앞을 달리고 있는 것은 모두 각 반에서 가장 빠른 선수들이다.
(……힘내자!)
포기할까보냐. 모두가 일부러 나를 마지막 주자로 뽑아주었는데.
쭉 가속하자 순식간에 한 명을 추월했다.
큰 몸은 약동하고 발은 힘차게 지면을 찬다.
한 걸음 내딛을 때 마다, 앞 선수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꺅!」
「대단해 대단해 대ー단해!」
「가라! 윳키!」
함성이 터지고, 응원이 힘이 되어 더욱 가속한다.
「1반 힘내세요! 빠르다, 빠르다 무려 1반이 3위로 올라섰습니다. ……에, 2위!? 잠, 저 아이 엄청 빠르지 않아?」
실황을 담당하고 있던 방송부 여자아이도 대흥분했다.
그리고 라스트 스퍼트. 데드 히트.
푸른 하늘에 큰 함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켄유가 1위로 골인했다.
네명 모두를 제치고 예상 밖의 1위!
이런 격렬한 달리기는 처음이라 켄유는 헉헉거리면서 6학년에게 1위의 어깨띠를 받는다. 관객석에서는 성대한 박수가 터져나온다.
「윳키, 대단해!」「1위야 1위!」「너 쩐다!」
반 친구들이 웃으면서 켄유를 둘러싼다.
그 미소가 참을 수 없이 기뻤다.
「……응원해줘서 고마워! 모두의 목소리가 들렸어! 그래서 힘낼 수 있었어!」
이것이 켄유의, 거짓 없는 진심 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를 믿어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켄유에게 그것은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며칠 후.
집에 돌아오니 현관앞에 반짝 거리는 축구공이 놓여 있었다.
「와아! 이거 뭐야!?」
「축구를 해보면 어떨까 해서. 켄유는 달리기도 빠르고 축구는 멋있잖아! 게다가 인기 많을것 같지 않아? 」
운동회에서 자식의 경이적으로 빠른 발을 목격한 부모님은, 「뭔가 스포츠를 시키는게 좋을지도 몰라!」 라고 상담을 하며 일단 축구공을 사보았다.
거기에 어머니는 단순히 인기 있는 아들을 보고 싶었던 것도 있다.
켄유는 바로 밖으로 나가 공을 차보았다.
공과 함께 달리기 시작하자 멈출 줄 몰랐다. 공을 차서 밀어내고 다시 따라잡고, 점점 앞으로 나간다.
(우와아……즐거워!)
실은 스피드를 줄이지 않고 드리블을 하는 것은 초심자에게는 어려운 기술이지만, 운동신경이 좋은 켄유는 처음부터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켄유는 축구와 만났다.
부모님이 인연을 맺어준 것이다.
켄유는 자연스럽고 운명적으로 축구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재능
(축구는 재미있어!)
학교에서 돌아오면 켄유는 근처의 공터로 축구공을 안고 나갔다.
초등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고, 친구들은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혼자서 드리블 연습을 했다.
곳곳에 울퉁불퉁한 돌과 풀숲이 있어서 축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피해 드리블을 하는것도 재미있었고, 발에 공이 붙는 감각이 좋았다.
「왈왈!」
「앗!?」
어느 날, 평소처럼 혼자서 연습하고 있는데 큰 개가 다가왔다. 목줄을 하고 있고, 크기는 컸지만 사람을 잘 따르는것 같았다. 개는 켄유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뛰어다녔다.
「공이 필요해?」
가볍게 패스를 하자, 개는 신이나서 코 끝으로 공을 툭!
그대로 앞발로 찬 뒤 능숙하게 드리블을 시작한다.
켄유도 즐거워하며 그 뒤를 따라간다.
「어이 칸나바로! 이쪽으로 오렴. 미안하구나 연습 방해해서」
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당황하며 다가온다.
「칸나바로라고 불러? 괜찮아, 놀자 칸나바로!」
「왈!」
칸나바로는 골든 리트리버로 일어서면 켄유만큼 덩치가 컸다.
공을 노리고 장난치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칸나바로와 공을 뺏고 뺏기는게 즐거워서 저녁시간까지 공터를 뛰어다녔다.
「또 놀자!」
「왈!」
이것이 켄유가 처음으로 해 본 원온원 이었다.
이후로도 가끔씩 칸나바로가 찾아와 함께 축구를 하게 되었다.
역시 골든 리트리버 답게 반응도 스피드도 빨라 켄유는 바로 공을 빼앗기고 만다.
처음에는 완패했지만 매일 놀다보니 점점 요령이 생겼다.
우선, 드리블 터치를 섬세하게 한다. 크게 차버리면 칸나바로가 바로 달려들어 버리기 때문에 항상 발밑에 공을 두는 느낌으로.
춤추는 듯 스텝을 작게 밟고, 공을 발에 붙이듯 빙글빙글 돌리며 킵한다.
하지만 칸나바로는 영리해서 점점 켄유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빠져나오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 공을 빼앗아 간다. 영리하다.
아무래도 중심을 기울이는 동작에 반응하고 있는 것 같다. 켄유는 그것을 역수로 잡았다.
오른쪽으로 가는척 하며 왼쪽으로. 페인트였다.
드리블로 칸나바로를 빠져나왔을 때는 참을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그 때의 켄유는 몰랐지만, 드래그 시저스라고 불리는 어려운 페인트에 가까운 동작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게 되었다.
페인트가 능숙해지고, 스텝이 더욱 정교해지며 드리블이 고도화 되어간다. 또한 칸나바로의 체력에는 바닥이 없어서 켄유도 점점 강해졌다.
「오늘은 켄쨩이 이겼네」
주인 할아버지도 그런 말을 하면서 켄유와 칸나바로가 하는 축구를 항상 즐겁게 바라본다.
「켄쨩은 점점 잘하는구나」
할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은 켄유는 매우 기뻤다.
「고마워! 나 앞으로 프로 축구 선수가 될거야!」
프로 축구 선수가 되고싶다. 그것은 초등학생 다운 악의없는 꿈이었다.
「그거 좋네! 켄쨩이 프로가 돼서 일본 대표가 된다면 분명 세계 제일이 될 수 있을거란다」
일본대표. 세계 제일. 할아버지의 말에 켄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응! 나 세계제일을 목표로 할래!」
「그런가 그런가」
켄유가 정말 기쁜듯이 말 하자 할아버지도 눈을 가늘게 뜨며 말 했다.
「실은, 우리 아들도 계속 축구를 하고 있거든. 지금 축구 스쿨에서 코치를 하고 있단다. 다음에 한번 와 볼래?」
「에! 가고싶어!」
이것은 또 하나의 큰 만남이었다.
할아버지가 축구 스쿨의 이름을 알려주자 바로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스쿨을 다니기 시작하자, 켄유의 재능은 단번에 개화했다.
칸나바로와 원온원으로 훈련하며 다져진 드리블 기술과 체력.
타고난 신체능력과 선천적인 외골수의 스토익 정신.
무엇보다 켄유는 자신을 믿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 과잉도, 어린아이 같은 만능감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기쁨과 그 신뢰에 보답하려는 올곧은 마음이다.
반장이 된 것도, 운동회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가 된 것도, 축구를 시작한 것도, 자신을 발견해 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직 내가 모르는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어)
사람을 진심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코치의 지도와 팀 내에서의 절차탁마로 점점 레벨업 했고, 켄유는 스트라이커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언젠가 프로가 되고 일본 대표가 되어 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가 될거야!」
켄유의 꿈은 망설임 없이, 흐려지지 않고 확실한 것이 되어갔다.
올곧음
중학생이 되면서 성장기의 켄유는 키가 더 커졌다.
하지만 성장과 동시에 칠판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얼굴을 책 가까이 대고 읽었기 때문인가?)
집중해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새우등이 되어 있어서 어머니께 「좀 더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을 떼고 읽으렴」하고 자주 주의를 받는다.
방 책장에는 위인전 시리즈와 「위대한 개츠비」「호밀밭의 파수꾼」 등의 명작이나 점프,매거진 등 잡지 만화가 늘어서 있다.
어릴적 받았던 위인전 시리즈는 지금 읽으면 새로운 발견 이었다.
베토벤, 갈릴레오, 잔 다르크, 노구치 히데요.
재능을 타고난 인간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되는 비극. 그리고 그럼에도 지지않고 공을 이룬 훌륭한 위인들이 이미 죽고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 그 애처로움에 뭐라 말 할수 없을 정도로 뭉클해져 동정심을 느끼게 된다.
위인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전 30권을 다 읽었던 것이 잘못이었는지, 부모님 모두 안경을 쓰고 있어서 유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력 검사에서 제대로 걸리고 말았다.
낙담했지만 조사해 보니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는 프로 축구 선수도 있다.
켄유도 안경이 아닌 콘택트렌즈를 사용해 보았지만, 플레이에 거의 지장이 없고 특별히 문제도 없었다.
축구 스쿨에서는 학년을 넘어 단연 돋보일 정도의 실력이었다. 재능이 있는데다 연습도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축구를 좋아한다.
시간만 나면 혼자서 공을 차고 있다. 초등학교 때는 공터에서 축구를 했지만 지금은 노상이나 스트리트 축구로 변해 있었다.
연습이 없는 날에는 공을 한손에 들고 거리에 나간다.
인적이 드문 길과 시간을 선택해 연석, 소화전등 여러 장애물을 피해 드리블을 하고 있으면 마치 고무줄이라도 붙은것 처럼 켄유의 발에서 공이 떨어지질 않는다.
익숙한 거리에서도 새로운 만남과 발견이 있는 스트리트 축구를 켄유는 정말 좋아했다.
길고양이에게 이끌려 뜻밖의 풍경과 마주친 적도 있다.
「냐앙」
마치 따라오라는 듯 이쪽을 돌아보며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고양이.
켄유는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드리블을 하며 따라가자 골목 끝에는 만개한 벚꽃이 맞이하고 있었다.
「예쁘다……」

켄유는 벚꽃을 좋아한다. 초등등학교 시절 교정에 벚꽃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당당하게 피었다가, 깨끗하게 진다.
그 덧없음에 젖어들기도 하고 벚꽃의 아름다움과 애절함을 느끼며 멍하게 바라본다. 그런 시간이 좋았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흩날린다.
켄유는 길고양이와 함께 언제가지나 벚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평소처럼 스트리트 축구를 하고 있는데 문득 옆길에서 목소리가 들린 느낌이었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지만 왠지 신경쓰여 드리블을 늦췄다.
들여다 보니 건설중인 뼈대만 있는 건물이 있었고 그곳에 다른 중학교의 학생 4명이 모여 있었다.
(!)
네명 가운데 엎드린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 학생이 있다.
켄유와 같은 중학교 교복으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어이! 제대로 돈 가져 와」
쿵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학생이 엎드려 있는 남학생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윽」 하는 둔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위험해……삥 뜯기고 있어)
「시시해ー」
「돈 내놓으라고!」
퍽! 퍽!
동료들도 뒤이어 등을 걷어찼다.
「이제……그만해……돈같은거……없어」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려온다.
「그럼 만들어! 아르바이트를 하든, 부모 돈을 훔치든, 다른 사람한테 뜯어내든!」
「이제……무리라고……정말……무리라니까……」
사라질것 같은 목소리가 「시끄러!」하는 노성에 지워지고 다시 걷어차기 시작한다.
(어떡하지……저 아이……저 너셕들……)
그렇게 생각한 다음 순간, 켄유는 달려나가고 있었다.
「오라! 죽어!」
「그만해!」
더 세게 걷어차기 위해 다리를 들어 올린 갈색 머리의 얼굴을 향해 들고 있던 축구공을 던졌다.
「부핫」
기습을 당한 갈색머리가 코를 움켜쥔다.
「뭐하는 거야 너희들!」
켄유는 화를 내며 갈색머리에게 덤벼든다.
퍽!
첫발은 적중.
하지만 그 이후로는 계획이 없었다.
너무도 무도한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지만, 우등생인 켄유는 태어나서 한번도 물리적인 싸움을 한적이 없었다.
(아……위험……)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리가 움츠러 들었다.
「아프잖아 이 자식아!」
바로 한대 얻어 맞고, 강렬한 통증이 뺨에 전해졌다. 맞은것도 처음이었다.
「뭐야 이녀석!?」
「아!?」
「누구야 네놈은?」
게다가 명치에 주먹을 강하게 맞고 「크흑」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곳을 발로 걷어차고 넘어진 곳에 용서 없는 안면 킥. 반격할 틈도 없이 얻어 맞았고 네 명 상대로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입 안에 피가 고인다.
「건방떨지마!」
「죽여버린다! 죽어! 꺼져!」
「오, 이녀석 돈 가지고 있잖아」
온 몸에 찌릿찌릿한 뜨거운 통증을 느끼면서 (경찰에 신고하는게 먼저였을지도……) 라고 후회 했지만 이미 늦었다.
「바이바이. 정의의 편 군♪」
「갸하하!」
한대 얻어 맞은 뒤, 돈을 빼앗고 빈 지갑을 얼굴에 던진다.
「우우……」
낄낄거리며 돌아가는 네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엎드려 있던 남자 아이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켄유가 당하고 있는 틈을 타서 도망친것 같다.
「진짜냐……나 뭐하는 거야」
얻어 맞고, 돈을 빼앗기고, 도와준 놈은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열이 올라 생각 없이 움직인 본인의 자업자득이다.
「……하하. 최악. 바보구나 난. 이런점은 진짜 바보야」
하늘을 바라보며 누운 채, 켄유는 자학적으로 웃었다.
「아얏」
웃었더니 걷어 차인 갈비뼈와 찢어진 입술이 엄청 아팠다.
눈물을 참으며 켄유는 다시 웃었다.
다음 날, 얼굴이 부어오른 채로 학교에 가게 됐다.
「윳키다!」
「왔다! 윳키!」
교문을 들어서자 창문에서 얼굴을 내민 반 친구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돌이 왔나 싶을 정도로 소란스러운 가운데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손을 흔드는 녀석도 있다.
(뭐야……?)
반 친구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왠지 전교생이 자신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아니, 기분탓이 아니라 진짜로 보고있다. 부어오른 얼굴때문인줄 알았는데, 그런것도 아닌것 같다.
「저기, 저 사람이 유키미야 군?」
「멋져!」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영문을 모른채로 교실에 들어서자, 와 하고 반 친구들에게 둘러싸였다.
「너 어제 이사장의 아들을 구했다며!?」
「1대4로 싸웠다면서?」
「엄청 멋있잖아!」
왜인지, 어제의 싸움이 알려져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있자 누군가가 말했다.
「학교 뒷 게시판에 윳키가 사람을 도왔다고 쓰여있대」
「에엣!?」
놀랍게도 어제의 엎드려 있던 남자아이가 한번은 도망쳤지만 생각을 고치고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켄유는 이미 돌아간 뒤였지만 지갑에서 떨어진 안과의 진찰권이 떨어져 있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같은 학교 축구부의 에이스 이름이었다.
몹시 감동한 남자아이는, 학교 뒷 게시판에 그 사실을 적었다. 그게 단숨에 퍼져나간 것이다.
「윳키! 정의의 편이잖아!」
「대단해 불량배들을 상대하다니」
「그 아이, 정말 고마워했어 다른 학교 녀석들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했는데 누구에게도 말 하지 못하고 계속 혼자 고민하고 있었대」
별로 칭찬 받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지만, 고맙다는 말을 듣는것은 기뻤다.
「그런가……다행이다……」
몸의 통증도, 한심한 기분도, 후회도 날아갔다.
(……내가 돕고 싶어서 한 행동은 잘못된게 아니었어)
어제는 한심해서 울고싶은 기분이었는데, 왠지 또 다시 신이 나를 찾아준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엎드려있던 남자 아이는 켄유가 다니는 이사장의 아들이었다. 켄유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동안의 일을 고백했다. 아버지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여 괴롭히던 녀석들을 찾아냈고 가해자들은 합당한 처분이 내려졌다.
켄유에 대해서는 운동부가 폭력 사건에 관련되어있다고 여겨지지 않도록 표면상의 답례는 없었지만, 뒤에서는 확실히 어른다운 답례가 준비되어 있었다.
3학년이 된 켄유는 추천서를 받을 고등학교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성적도 좋고, 품행도 바르며, 축구 재능도 탑 클래스였다. 비공식적인 경로가 아닌 평범한 추천전형 이었지만 이사장의 입김으로 켄유를 최우선으로 해주었다.
선택한 학교는 미야자키 현의 명문, 소라닌 고등학교.
일찍이 축구부 추천이 결정된 덕분에, 켄유는 수험 걱정 없이 연습에 집중 할 수 있었다.
신은 지켜보고 있다.
행복의 절정
고등학생이 된 켄유는 그 어느때보다 충실했다.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드리블과 돌진력으로 레귤러를 따냈다.
「원온원 최강 왕자」 라는 별명이 붙으며, 강호 고교 중에서도 기대되는 신인으로 도내에서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
노력은 결과를 낳고, 결과는 자신감이 된다.
그 자신감이 더욱 켄유를 빛냈다.
그 오라를 캐치한것은 어찌된 일인지 패션잡지의 카메라맨이었다.
친구와 도쿄여행 중 들른 하라주쿠.
「거기 너! 모델 하지 않을래?」
「헤?」
「혹시 어디 사무소에 들어가 있어? 아니, 엄청나게 오라가 있어서 말이야」
외모가 뛰어나고 오라가 있다. 그리고 지방에서 눈에 띌 정도로 세련된 것은 미용사인 엄마 덕분이었다.
「죄송합니다……친구와 쇼핑하러 왔을 뿐이고. 그런거엔 별로 관심 없어서」
정중하게 거절하는 켄유.
「그럼 사진 한장만으로도 괜찮으니까! 어때?」
뭐가 「그럼」 인지는 모르겠지만, 억지로 밀어 붙이는 카메라맨.
「아니, 곤란해요. 다음 달에 축구 전일본 선수권이 있어서요. 그런건 좀……」
「진짜!? 너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야!? 황금알 발견!」
무심코 말을 내뱉자, 카메라멘의 텐션이 단숨에 올라갔다.
「무슨 일이야ー?」
「에! 스카우트?」
켄유는 거절할 생각 이었지만 함께 온 친구 두 명이 「괜찮잖아!」「쩐다!」 하고 신이나버렸다.
「이름은?」
「유키미야 켄유입니다」
「좋네! 잘 팔릴거야! 전면 서포트 할테니까!」
「제멋대로군요……」
켄유는 흐름에 떠밀려 촬영을 하게 되었다.
「장래에는 어떤 길을?」
「프로입니다……저는 축구로──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가 될거에요」
켄유가 당당하게 말 하자, 카메라맨도 「최고잖아!」라고 가볍게 받아쳤다.
「될 수 있어! 너라면!」
이것은 립서비스가 아니라 의외로 카메라맨의 진심이었다.
켄유에게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오라가 분명히 있었다.

이케멘에 축구선수 유망주. 켄유의 스냅사진은 그 10대 대상 남성 패션 잡지에 꽤 크게 실렸다.
그 반응이 좋았던것 같다. 다음달에는 편집자와 카메라맨이 일부러 미야자키까지 촬영하러 왔고, 켄유는 연속으로 그 잡지에 실렸다.
그러자 들어본 적 있는 연예 사무소에서 연락이 왔고, 켄유는 부모님과 상담한 뒤 그 사무소에 소속되기로 했다.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모델로서 쾅! 하고 잡지 지면을 장식한 것이다.
「이 아이 정말 멋지지 않아?」
「전국대회라니 대박이잖아! 1년만에 레귤러라니 대단해!」
「키도 183cm래~! 얼굴도 스타일도 최고!」
지역 한정이었던 켄유의 인기는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다른 현의 여자 아이들이 켄유를 보기 위해 오거나, 시합에 팬 부채를 든 군단이 응원하러 오기도 했다.
응원을 받는것은 솔직히 기뻤다.
축구를 하며 「강해!」「대단해!」 라는 말을 듣고, 모델 활동을 하며 「멋져!」「잘생겼어!」라는 말을 듣는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리고 그 매일은 하나의 가치관을 만들어 냈다.
「나는 역시 누군가에게 선택받은 인간이야」
발견되고 계속 선택받아 여기까지 왔다.
올바른 마음 가짐으로 살아가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과 연결되고, 사람에게 은혜를 입는다.
무서울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나답게 살면 된다.
지금은 축구를 열심히 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언젠가 일본대표가 되어 W컵에 나가 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가 된다.
터무니 없는 꿈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믿으면 된다.
분명 이 꿈도 올바르게 살아가면 분명 이루어 진다. 선택받는다. 발견된다.
「신은 나를 봐주고 있어」
켄유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마음 깊은곳에서, 아무 근심도 없이.
그것이 행복의 절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년 후 였다.
다시 벚꽃이 흩날리는 그 계절.
평생분의 눈물
고등학교 3학년 봄. 소라닌 고등학교는 유키미야 켄유를 에이스로 해서, 전국을 향한 티켓을 건 1년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켄유에게는 고등학교 생활 마지막 해다.
1학년, 2학년 모두 레귤러 선수로 전국 대회에 출전 했지만, 모두 1회전에서 패배였다.
올해는 다르다. 에이스로서, 캡틴으로서 반드시 전국 우승을 하고 말겠다.
원온원 최강 왕자라고 불리는 실력이라면 분명 가능.
(그리고 프로의 스카우트를 기다린다. 우승한다면 반드시 찾아주겠지!)
켄유에게는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미래였다.
연습이 끝나고 팀원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라……?)
그날은 비 때문에 체육관에서 연습을 하게 되었고, 꽤나 강도높은 피지컬 트레이닝을 했다.
「오늘은 엄청 지치네~」
「응? 왜그래 윳키」
켄유는 시야에 위화감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아. 미안. 뭔가……눈이 흐려서」
눈 앞에는 우산을 든 친구가 두사람.
비로 인해 시야가 나쁘고, 하늘은 흐릿하고 어둡다. 그 어둠과는 다른, 검은 안개가 시야의 가장자리에 보인다.
아니, 시야가 까맣게 흐려져 있는 것이다.
「괜찮은거야ー?」
그렇게 묻는 친구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지만, 그 얼굴도 희미해져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
하룻밤 푹 자면 나을줄 알았는데 다음날도 잘 보이지 않았다.
켄유는 원래 시력이 좋지 않았는데 최근엔 더욱 시력이 나빠진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큰 병원 안과에서 진찰을 받기로 했다.
(시력 회복 수술 같은것도 있는것 같고, 프로가 되려면 그런것도 생각해 보는게 좋으려나)
그 정도의 마음이었지만, 진찰 결과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피로할 때 시야가 좁아지거나 눈앞이 뿌옇게 보이는 시신경 질활입니다」
현지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노의사가 차분한 말투로,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진행을 멈출 수 없는 눈 질환으로, 두통이나 구토등을 동반하며 최악의 경우……실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실명에 이르는 눈 질환.
「다만, 적절히 치료하면 진행을 늦출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실명까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모델 활동이나 일상생활에는 문제 없단다」
조용한 진찰실. 선생님의 차분한 말투. 천천히 이야기 해주고 있지만, 내용이 바로 이해되지 않는다.
실명. 모델. 일상생활.
켄유는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 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발밑이 무너지는듯한 소름끼치는 감각.
그것은 처음 느껴보는 "공포"였다.
「저……축구는……?」
그 공포를 억누르고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잠시 입을 다문 후, 차분한 말투를 잃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취미로 즐기는 범위의 스포츠라면 문제는 없지만……진행중에 지금처럼 계속 플레이를 이어나가는 것은……솔직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리가 떨린다. 손이 차가워진다.
「안타깝지만……프로의 길은 어렵다고 말할 수 밖에 없어」
선생님의 상냥한 목소리. 잔혹한 선고.
(왜……나야)
떨림과 냉기가 온몸에 퍼진다.
「선생님……저는 아무것도……나쁜 일 따위 한적 없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쥐어짜듯 말 했다.
신에게 미움 받을 만한 일 같은건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단지 축구를 열심히 했을 뿐이다. 간사한 짓도 비겁한 짓도 하지 않고, 성실하게 한결같이.
(왜……빼앗아 가는거야……)
떼를 쓰는 아이처럼 울먹인다.
「축구로 세계 제일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이상해……이런거……싫어……나……」
떨리는 몸을 끌어안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계속해서 넘쳐흘러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내 꿈……돌려줘……」
(다른건 아무것도……필요 없으니까)
마지막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켄유의 진짜 모습은, 얌전하고, 친구들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우물쭈물 앉아 있는 작은 남자 아이이다.
그 켄유를 여기까지 이끌어 놓고선 모든것을 빼앗아 간다.
신이 그렇게 잔혹한 일을 한다니, 믿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축구공을 선물 받은 기쁨.
칸나바로와 축구를 했던 그 날.
스쿨에서 팀 메이트들과 함께 웃었다.
그리고 전국 우승을 진심으로 목표로 했던 어제까지.
일본 대표가 되고, W컵에 나가 세계제일의 스트라이커가 된다.
아까까지 그렇게 믿었던 자신.
모든것이 머나먼 거짓말처럼 느껴지고, 슬프고, 잃고싶지 않아서 끝없이 눈물이 흘러 넘친다.
「왜……왜……싫어……나……아직……」
평생분의 눈물이 흘러도 오열은 멈추지 않는다.
「알겠어……유키미야 군」
노의사가 무릎을 꿇고 켄유의 양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었다.
「……최대한 노력하자. 나는 네가 프로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서포트 할게. 하지만 진행은 계속 된다. 네가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그래도 꿈을 따라가 볼거니……?」
드디어 켄유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게……허락된다면)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 가능성이 있다.
「……네」
눈물이 마르고, 작은 희망의 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
(신이시여……다시 한번 저를……발견해 주세요)
심중
이후로 켄유는 그 어느 때보다 축구에 몰두했다.
언젠가는 축구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눈이 나빠지기 전까지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싶다.
혼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친구들과 노는 시간은 낭비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달리거나 축구 전술을 공부하는데 쓴다.
(더 효율적으로. 더 완벽하게. 더……)
한결같은 켄유답게 성실하고, 스토익하게 노력을 거듭하며 최단시간에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는 트레이닝을 짜서 실행한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어. 나에게는 시간이……)
「있지……최근 윳키, 무섭지 않아?」
켄유가 없는 부실에서 팀원 중 한명이 말했다.
연습이 끝나면 켄유는 바로 돌아가버렸다.
「알아ー. 조금만 실수해도 엄청 화내고. 뭐 실수한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오늘 연습중에 켄유에게 「집중해!」 라고 야단맞은 녀석이 어깨를 으쓱한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뭐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화를 내고 있는데도 울고 있는 것 같은」
「하? 무슨 뜻이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녀석이 「아아, 그거 알것같아」라며 끼어들었다.
「윳키, 뭔가 초조해 하고 있는것 같은. 쫓기고 있다고 해야할지」
예전부터 스토익하고 성실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같이 집에 돌아갈 때는 시시한 이야기도 하고 교문에서 기다리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정도는 하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와도 필요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고, 팬들도 철저히 무시한다.
여유가 사라지고 축구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뭐에 쫓기고 있는거야? 그렇게 축복받았는데」
눈의 병에 대해서는 켄유는 부모님 외에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
재능, 외모, 인망, 피지컬. 전부가지고 있으면서 초조해 하는 이유를, 팀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빨리, 빨리 결과를 내지 않으면……가장 빠른 루트로 일본 대표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데……! 젠장……! 젠장……!!)
집에 돌아온 켄유는 샤워를 하면서 오늘 연습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전국 대회 우승을 목표로 하는 자신의 이상적인 플레이가 동료의 실수로 형태를 이루지 못한다.
초조함과 분노로 몸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이 분노를 팀원들에게 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고쳤다.
「진정해, 나……답지 않아」
잘못된 행동이라고 반성하며 심호흡을 한다.
(앞으로 몇년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곧게 살아가면 분명 신은 봐 줄거야. 그러니까 반드시……)
그러니까 반드시?
문득, 켄유는 무서워졌다.
쫓아가기에는 W컵의 꿈은 너무 멀다.
언제 증세가 악화되어 축구를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것을 내어주고 꿈을 보여주며, 지옥에 빠뜨리는 일을 신이 할까? 발견해 주었다. 선택해 주었다. 지켜봐 주고 있다. 그런 일은 없을것이다.
꿈이 이루어지고 나서 축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그래도 괜찮다.
그 한순간을 위해 지금을 살고 싶다.
꿈과 함께 죽을 각오는, 되어 있다.
하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절망도 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것은 왜일까.
자신의 실력으로는 프로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프로가 되어도 다음 W컵에 나가지 못하면, 분명 그 다음은 없다.
노력해도 헛수고일지도 모른다.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축구를 그만두고, 모델일에 진심이 되면 된다. 사무소 사람들 한테도 여러번 설득 당하고 있다. 장래로 가는 길은 한 가지가 아니다.
아니……하지만. 정말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야. 축구를 하고 싶다. 축구로 세계 제일이 되고 싶다.
켄유는 얼굴을 가로저었다.
망설이지 마.
왜냐하면, 나는 나쁜 일 같은거 하고있지 않아.
열심히 노력해 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보답받지 못하다니 이상해. 분명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반드시.
……하지만 그런건 그저 형편좋은 망상이다. 꿈이 깨지는 일도 있다. 어떤 보장도 없다.
냉정한 자신이 그렇게 말 하자, 생각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며 더욱 무서워 진다.
혼자서 절벽 위를 전력질주하는것 처럼 무섭고 무서워서 견딜 수 없다.
떨린다. 눈물이 나온다. 잠이 오지 않는다.
공포에 휩싸인 밤. 켄유는 의지하듯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를 보거나 잔잔한 음악을 듣기도 했다.
축구를 빼앗긴 미래라도 「인생은 축구만 있는게 아니야」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이야기가 좋다.
나약하고 자신감 없는 자신을 긍정해주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 해주는 잔잔한 곡을 찾았다.
영화와 음악을 정신안정제로 삼아 술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이야기
그리고 현 예선이 시작되었다.
「역시 원온원 최강 왕자~!」
「윳키! 윳키! 윳키!」
눈의 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켄유의 팬들은 화려한 응원을 펼쳤고, 1회전은 무사히 승리했다. 이전에는 웃으면서 응원에 화답했지만, 지금의 켄유에게는 그런 여유는 없다.
지면 모든게 끝난다.
그렇게 생각하니 점점 잠이 오지 않았다.
현 예선에서 전국대회까지 가는 길은 멀다.
이러다가는 먼저 마음이 무너진다. 게다가 수면 부족은 병을 악화시키는 큰 요인이다. 하루 8시간은 자야하는데.
하지만 조바심을 낼 수록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까지 잠 못 이루는 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밤.
「뭔가……잠 들수 있는 음악……」
수면 부족으로 멍한 머리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으면, 마침 그럴듯한 플레이 리스트가 있었다. 재생해 보니 속삭이는듯한 보컬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부드러운 멜로디.
모르는 곡. 처음 듣는 목소리.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켄유는 어느새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아침,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어제 들으며 잠들었던 그 노래의 한 구절이 귓가에 맴돌았다.
「신은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시련만 주는 거야」
누구의, 무슨 노래인지도 모른다.
정말 들었던 것인지, 꿈에서 들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켄유는 그 구절에 힘을 얻은 기분이었다.
극복할 수 있는 시련……그 말을 마음속으로 몇번이고 되뇌었다.
눈의 병이 무서워 울고 있던 자신.
축구의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자신.
흩어져 있던 자신이 하나가 된 것 같은 감각.
「역시 신은 나를 보고 있어. 분명 신은……극복할 수 있는 시련만 주는 거야」
약한 자신도, 노력하는 자신도 인정해 주자.
괜찮아. 극복할 수 있어.
켄유는 자신을 믿음으로써, 더 크고 강해질 수 있을것 같았다.
「어떤가요 선생님……?」
그 날은 안과에 가는 날이었다.
새 안경을 만들고 시력을 체크 한다.
「응. 잘 어울리네. 축 안경 데뷔. 눈 치료도 순조로워. 좋은 의미의 현상유지야. 낫고 있는건 아니지만, 나빠지지도 않았어……. 편하게, 느긋하게, 함께 해 나가면 돼」
선생님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켄유는 안심했다.
매번 울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던 진찰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선생님……저, 이 눈에대해서 드디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것 같아요」
「……그렇구나. 그거 다행이구나」
마음은 차분해졌다.
그 어느때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냉정하게 말 할수 있다.
「『신은 극복할 수 없는 시련은 주지 않는다』라고 말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은, 저에게 주어진……극복할 수 있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 진다.
믿자.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그 후, 팀의 쾌속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켄유는 무시무시한 플레이로 팀을 이끌었고, 소라닌 고등학교는 압승의 연속이었다.
무자비하게 다른 학교를 압도해가며, 전국대회 출전을 확정했다.
(좋아! 일단 여기까지 왔어……)
망설임을 날려버린 덕분인지, 열광하는 팬들에게 제대로 고개숙여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었다. 기뻐하는 팀원들과도 기쁨을 나누었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야. 전국 우승, 프로 스카우트, 일본대표, W컵.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면 분명 가까워 질거야. 시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아직은 보여. 아직 싸울수 있어. 아직……!)
다음 날 켄유에게 JFU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강화 지정 선수로 선발되었습니다. ───일본 축구 연합>
(해냈다……드디어……)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고 켄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올곧게, 자신을 믿고 나아가면 분명 신은 봐줄거야. 반드시)
……신은……아니, 에고 진파치는 보고 있었다.
켄유에게 이 남자는 신인가 악마인가.
그 답은 "푸른 감옥"에 있다.
지금은 아직, 이야기 도중이다.
그저 정직하게, 오로지 올곧게 노력해 가자.
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 라는 꿈을 믿고.
유키미야 켄유는 결코 꺾이지 않을 희망을 가슴에 품고, 흐림 없는 미소로 우리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 앞에는 아직 만난적 없는 이사기 요이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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