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록 전일담 소설 번역 <이사기 요이치>
축구 세계에서 일류 골키퍼나 수비수, 미드필더는 키울 수 있지만 스트라이커만은 그렇지 못한다.
일류 스트라이커라는 생물은 그 순간, 축구의 가장 뜨거운 곳에, 갑자기 나타나기 마련이다…….
전형
컵 야키소바는 싫지 않다.
오히려 좋아한다.
평범하게 맛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삼시세끼 컵 야키소바는 어떨까?
일본 축구 연합 직원, 테이에리 안리는 눈살을 찌푸린다.
책상 위에는 비어있는 컵 야키소바가 쌓여 있고, 바닥에 있는 비닐봉투의 내용물도 컵 야키소바이며, 게다가 현재 진행형으로 컵 야키소바를 먹고있다.
"푸른 감옥" 의 코치 에고 진파치.
입은 우물거리고 있지만, 안경 너머 부릅뜬 눈은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그는 안리 본인이 초빙한 코치다.
안리가 일본 축구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기 위해 고용한 키맨이자 "푸른 감옥" 이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프로젝트를 생각한 장본인.
대단한 괴짜……아니,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걸출한 인물 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컵라면을 사랑할 줄은 몰랐다.
건강을 해치지 않을지 조금 걱정이 된다.
「그럼 다음 선발 영상입니다.」
컵 야키소바에서 의식을 일로 되돌리고, 안리가 리모컨으로 화면을 바꾼다.
"푸른 감옥"의 모니터룸.
벽면을 가득 채운 여러개의 디스플레이와 방대한 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한 컴퓨터가 늘어서 있다.
화면에는 전국 고교 축구 선수권 대회 사이타마현 대회 예선 1라운드의 다이제스트 영상이 흘러나왔다.
카메라는 11번의 선수를 쫓고 있다. 경기 막바지. 11번이 훌륭한 라스트 패스를 했고, 아군이 골을 넣었다.
11번째 선수가 슛을 넣은 동료와 뜨겁게 포옹하는 순간, 안리는 영상을 멈췄다.
「이 아이는……스트라이커로는 안되겠네요. 다음 선발 영상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스트라이커로는 안된다.
에고와 안리는, 이제부터 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를 만들기 위한 실험을 하려고 한다.
재능의 원석인 18살 이하의 스트라이커 300명이 공동생활을 하며 에고가 고안한 특수한 탑 트레이닝을 한다. 그것이 바로 "푸른 감옥"이다.
"푸른 감옥" 의 서바이벌을 이겨내고, 299명을 쓰러뜨려 마지막에 남는 단 한 사람이야 말로 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이 좋은 팀원에게 바로 패스를 주는 아이는 조금 다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그런 착한 플레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기다려, 안리 쨩. 이건 재밌는 소재야.」
컵 야키소바를 다 먹은 에고가 몸을 숙였다. 화면을 먹어 치우듯 바라보고 있다.
「이 녀석의 영상 전부 보여줘. 이름은?」
안리는 서둘러 데이터를 찾아보았다. 이치난 고등학교 축구부의 11번은…….
「……이사기 요이치 군 입니다.」
몇 개의 이사기 요이치의 시합 영상을 틀어봤지만, 그는 완전히 조직적인 축구의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패스를 돌리며 공격의 축을 올리고, 프리한 선수에게 라스트 패스.
(으~음. 확실히 우수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잘하는 것 뿐이지.)
혁명적인 스트라이커는 모두, 희대의 에고이스트다.
자신의 골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고, 그 순간만을 위해 살아간다.
필드 위의 주역.
자신 외에는 조연.
그런 세계 제일의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가 될 수 없다……!
그것이 에고의 생각이다.
"푸른 감옥"에 초대할 스트라이커 300명을 뽑는 것은 에고의 독단과 편견에 의해 결정되지만, 안리라도 알 수 있다.
(이사기 요이치……이 아이는 논외네.)
「응. 좋네 이사기 요이치. 안리 쨩, 이녀석 소집결정.」
거짓말.
「네……!」
안리는 당황하면서도 서둘러 이사기 요이치의 데이터에 「초빙」을 체크 했다.
울보 욧쨩
「아바바바! 욧쨩~♡ 파파란다♡ 새로운 장난감이야~♡」
물색 딸랑이를 흔들어 주자, 아기 이사기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끄윽, 흐에엥~.」
「어라……」
기쁘게 해주려고 사온 장난감 때문에 울려버려서 시무룩.
「안돼 여보. 욧쨩은 큰 소리가 무서운거야. 욧쨩, 마마예요~. 자, 곰돌이 인형이야~♡」
귀여운 인형을 아기 이사기의 코앞에 내밀었다.
「흐에에에엥!!」
더 큰 소리로 운다.
「……어라라, 곰돌이도 무서운거니.」
언행이 부드럽고 느긋한 아버지, 잇세이.
온순하고 상냥한 어머지, 이요.
온화한 두 사람을 부모로 둔 이사기 요이치는 타고난 「겁쟁이」였다.
주전자 물 끓는 소리, 산책 중인 강아지, 매미의 허물……뭐든지 겁먹고 울음을 터뜨려 버린다.
낯선 사람이 있으면 금세 어머니 뒤에 숨어버려 친구도 사귀지 못했고, 유치원에 가는것도 떼를 써서 힘들었다.
3살 여름에는 겁이 많아 이런 사건도 있었다.
거실에서 놀던 이사기가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무서워~! 으아아앙!」
크게 우는 이사기를 이요가 서둘러 안아서 달래주었다.
「왜그래? 뭐가 무서워?」
이사기가 울면서 필사적으로 공간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요가 눈을 부릅떠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얀 벽면만 있을 뿐이다.
「욧쨩, 뭐가 있는거야……?」
이요는 다음 대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마는 저게 안보이는거야!?」
더욱 심하게 우는 아이를 안고 이요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아이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건가……?
이사기는 아무 것도 없는 가리키며 울기 시작했다.
부엌 구석, 침실 창가, 벽장 안……
이 집에는 이사기에게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
설마, 유령……?
액막이를 하는것이 좋을지 부부끼리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 도중, 다시 이사기가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나왔다! 무서워~!」
나왔다……! 무엇이!?
이사기를 끌어안으며, 잇세이도 이요도 부들부들 떤다.
그 때, 잇세이의 귓가에 그 소리가 들렸다.
여름 특유의 불쾌한 소리와, 눈가를 스치는 그것. 문득 깨닫고 고개를 든다.
처음으로 이사기가 보고 있는 것을 잇세이의 눈으로도 파악할 수 있었다.
「알았어 엄마……! 욧쨩은 모기를 무서워 하는거야!」
이사기는, 보통 사람이 확인 할 수 없는 거리에서 모기를 발견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뿌려주었고, 이사기가의 심령현상은 마무리 되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공원에서 놀고 있을 때, 종종 머리를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머리가 아파?」
「아니~야~! 으아아앙!」
하늘을 올려다 보며 우는 바람에, 부모님은 나무 열매라도 떨어졌나, 누가 돌이라도 던졌나 싶어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칭얼거리는 이사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돌아갈 때가 되면 언제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이요는 결국 깨닫게 되었다.
「욧쨩…… 비를 무서워 하고 있어!」
공기의 냄새, 바람의 습기, 구름의 흐름.
하늘의 변화로 비가 올 것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사기가 겁이 많은 것은 시야가 넓고, 공간인식 능력이 뛰어나며, 시력, 동체시력, 후각, 청력, 촉각 모두 뛰어나기 때문.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리스크를 회피한다. 그래서 모기에 물리지 않고, 비에 맞지도 않는다.
이 뛰어난 감각이 축구에서는 공간 인지 능력에 의한 전황 예측으로 이어지지만, 당시에는 부모도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울보 욧쨩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4살 때였다.
아버지가 지인으로부터 J리그 티켓을 받아 가족들과 관전하게 된 것이다.
장소는 사이타마 스타디움. 부모님은 축구에 거의 관심이 없었지만 홈 경기라 그런지 열성적인 지역 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인파에 놀라 울지 않을까 하는 부모님의 예상과는 달리 이사기는 울지 않았다.
「우와……대단해…….」
시합이 시작되자, 이사기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선명한 녹색 잔디밭과 파란 하늘.
공을 쫓는 선수.
열광하는 관중.
규칙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저 자리에 서보고 싶다.
자신도 공을 쫓아보고 싶다.
「……나도, 축구 해보고 싶어」
시합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이사기는 「축구공이 갖고 싶어!」라며 부모님을 졸라댔다.
얌전한 아들이 축구에 관심을 보인것은 의외였지만, 부모님은 물론 대환영이었다.
바로 사 주자, 이사기는 흑백의 축구공에 「와아……!」 하며 눈을 빛냈다.
열중해서 공을 차는 아이를 보며, 잇세이&이요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다행이네ー, 욧쨩이 좋아하는게 생겨서!」
「그러게! 스포츠는 체력도 길러주니까, 잘됐어~.」
울보라도 괜찮아. 건강하게 자라주기만 하면 돼.
겁이 많은 외동 아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만으로 더없이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노엘 노아
이후, 이사기는 축구에 푹 빠졌다.
부모님께 부탁해서 축구 교실에 다니게 되었고, 축구 시합 중계가 있는 날에는 TV에 매달렸다. 점심시간에도 방과후에도 계속 축구뿐.
축구를 통해 친구도 생기고, 울보였던 이사기는 점점 활발해졌다.
그렇다고 해도, 겁 많고 얌전한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싸우는 일도 없고, 선생님께 반항하는 일도 없다.
운동신경은 좋지만 공부는 그저그런, 축구를 좋아하는 수수한 남자아이.
그런 모브캐릭터 직선이었던 이사기에게 8살의 어느 날,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TV너머로 한 명의 선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골을 넣는, 젊은 시절의 노엘 노아였다.
「멋있어……!」
차례로 상대를 제치고 확실하게 골을 넣는 차원이 다른 플레이에, 이사기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너무 대단해.
승리 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쿨했다.
「오늘도 정말 대단하네요! 시합을 돌아보며 소감 어떠신가요? 그 슈퍼골의 감촉은?」
「……특별히 없다. 평소와 같은 일을 했을 뿐.」
흥분한 인터뷰어에게 담담하게 대답한다.
「착각하지 마. 슈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떤 골도 똑같은 1점이다. 축구는 점수를 주고받는 스포츠고, 나는 그 속에서 골을 넣어야 하는 포지션에 있는 사람. 그걸 위해 살아가는 인간이니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노엘 노아는 웃는 얼굴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인터뷰어는 더욱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오오! 그건……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가 되어 월드컵을 목표로 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도!?」
「……승리만이 축구의 전부는 아니야. 물론 월드컵 우승도 원하지만, 나는 축구의 모든것을 느끼고 싶다. 예를들어…….」
이 다음 대사를, 이사기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아군에게 어시스트해서 1-0으로 이기는 것보다, 내가 해트트릭을 넣고 3-4로 지는게 더 기분 좋아. 그런 감정은 어디에서도 팔지 않잖아?」
오싹오싹!!
이사기의 몸에 전율이 흐른다.
(이 사람은, 내가 축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알고 있어!)
처음으로 축구를 봤던 그 때.
자신을 강렬하게 움직이게 한 것은「멋지다」「대단하다」는 감정뿐만이 아니었다.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축구는 11명 대 11명의 팀전이자, 개인전이기도 하다.
그것을 둘러싼 관객이 있고, 스타디움이 있고, 쇼이자 목숨을 건 싸움이기도 하다.
자신이 그 중심에 있는 스트라이커라는 존재가 되고싶다.
(나는 노엘 노아같은 스트라이커가 되고싶어…….!)
노엘 노아는 축구 세계의 정점에 서려고 한다.
(나도…….! 나도 노엘 노아처럼 되고싶어!)
축구뿐만 아니라, 스포츠에서 가장 빨리 발전하는 방법은 프로의 플레이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지만, 이사기는 노엘 노아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했다.
영상을 보고 분석하며, 노트에 기록한다.
머릿속을 노엘 노아의 축구로 가득 채운 채, 매일 연습에 몰두했다.
(나도 언젠가 일본 대표가 되어, 월드컵 결승전에서 골을 넣는거야!)
목표는 노엘 노아.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보면 「노엘 노아!」라고 대답하고, 자기소개 카드에는 「저의 장래희망은 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입니다」라고 쓰며, 산타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은 「월드컵 우승 트로피」였다.
이사기는 점점 강해지고 실력도 늘었다.
울보였던 게 거짓말처럼, 겁도 없이 적에게 돌진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5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중학교에선 본거지인 사이타마현에서 적수가 없는 스트라이커라고 불리게 되었다.
(노엘 노아같은 스트라이커가 될거야!)
그 꿈이, 이사기를 크게 바꾼 것이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축구 강호 이치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원 포 올
(노엘 노아같은 스트라이커가 될거야! 우선, 이치난 고등학교에서 전국대회다! 그리고 프로가 돼서, 일본 대표에 선발되고 월드컵에서 결승 골을 넣는거야!)
8살이 되던 그날부터 계속 마음속에 품고 있던 꿈이다.
그 꿈의 첫걸음이라고 기대에 부풀어 있던 이치난 고등학교 축구부, 입부 첫날.
부살에 들어서자, 이미 몇명의 신입 부원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있었다.
역사가 깊은 강호답게, 사물함 위에는 오래된 상장이나 트로피가 장식되어 있었고, 가장 넓은 벽면에는 붓으로 쓴 부훈이 붙여져 있다.
언제부터 붙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누렇게 변색된 부훈을 보고, 이사기의 마음속에 작은 위화감이 싹튼다.
<원 포 올, 올 포 원>
<하나의 난관이 지나면 또 다른 난관. 모두가 힘을 합치면 넘지 못할 벽은 없다>
뭔가 이상해……?
원 포 올, 올 포 원.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해 라는 뜻이다.
듣기에는 그럴듯 하지만, 승부는 그렇게 깨끗한게 아니지 않나?
자신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축구는, 더 잔혹했다.
그 잔혹한 세계를 혼자서 박살내는 스트라이커가 아름다웠다.
「너, 이사기 요이치 군 맞지!?」
갑자기 어깨를 치는 바람에 돌아보니 같은 신입 부원인것 같은 키가 큰 학생이 있었다.
「에? 응, 맞는데…….」
「우와ー, 대단해! 난 타다 토모나리야! 나도 포워드! 이사기 군은 대회에서 본 적 있어! 정말 잘하더라! 같은 팀이라니 완전 럭키잖아!」
「아니 그정도는……하하.」
첫 대면 인데 이렇게 다가오면 조금 쫄게된다.
「어이 얘들아! 이사기 군 이야!」
타다가 소리쳤다.
「정말이다! 이사기 요이치 잖아!」
「나 지역대회에서 붙은 적 있어!」
같은 1학년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다들 밝고 착해 보인다.
분위기 메이커인 타다 덕분에, 긴장하던 1학년들이 단숨에 친근한 분위기가 된다.
「이사기 군의 플레이는, 중학생 수준을 넘어서 위험했지~.」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오는 타다 덕분에, 이사기도 진정되어갔다.
……그도 같은 포워드니까,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벽에 붙은 부훈을 가리킨다.
「저기 말이야 타다군……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자신이 느낀 위화감을 말해보았다.
「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러니까……축구는 자기 힘으로 상대를 돌파해서, 스스로 골을 넣기 때문에 기분 좋은 거잖아? 그게 스트라이커의 기쁨이랄까. 힘을 합치는게 아니라, 스트라이커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중요한게 아닐까……해서.」
슬쩍 타다의 반응을 살펴본다.
「에ー? 혼자서는 축구 못하잖아.」
무슨 소리 하는거야? 하며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다.
「축구는 11명이 힘을 합쳐 싸우는 스포츠! 내 목표는 대표 11명의 끈끈한 팀플레이야! 원 포 올, 올 포 원!」
툭 어깨동무를 한다.
「모두 힘을 합쳐서 전국 가자!」
「오오!」
타다의 말에 다른 팀원들도 함께 흥분한다.
(어라? 이상하다고 느끼는건 나뿐인가……?)
이사기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기는 확신했다.
이치난 고등학교 축구부의 축구철학은 자신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감독은 붙임성 있고 정 많은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패스로 공을 돌리며 경기를 조립하는 연습은 솔직히 지루했다.
감독이 중요시하는 것은 파워나 스피드가 아니라, 동료와의 콤비네이션.
날카로운 패스로 공을 지키며 골에 다가가는 팀워크 플레이였다.
「나이스 패스! 이사기!」
「이사기, 엄청 좋은 패스 타이밍이야!」
웃는 얼굴로 대답하면서도, 동료들에게 칭찬을 받을 때마다 「이걸로 괜찮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패스를 해도 자신의 꿈에 가까워 지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정말 이걸로 괜찮은 걸까?)
실력이 있고 연습에도 열심이었던 이사기는 1학년 이면서 등번호를 받아 연습시합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합에서도 스트라이커로서의 자신은 요구받지 못하고 있었다.
시합은 이기고 있고, 불평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어느 날 연습이 끝나고.
이사기는 일생일대의 용기를 냈다.
큰맘먹고 감독의 뒷모습에, 「저, 실례합니다!」라고 말을 건다.
「응? 왜그래 이사기.」
얌전하고 순종적인 이사기가 감독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고 돌아가려던 다른 팀원들도 발걸음을 멈춘다.
「그게……저, 다음 시합……스트라이커로서, 가능하면…… 더 많은 슛을 노려보고 싶은데, 라고……생각하고 있어서…….」
이것이 이사기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용기였다.
「하하하! 눈에 띄고 싶은거냐ー?」
감독이 호쾌하게 웃어넘기자, 이를 지켜보던 팀원들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는 이사기의 개인기로 이길 수 있었겠지만, 고등학교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우선 팀플레이를 철저히 연습한다. 모두 함께 이기고, 모두 함께 강해진다! 그렇게 하면 기쁨은 두 배! 슬픔은 절반이다! 그게 바로 이치난의 축구다!」
감독은 팀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설파했고, 거기에 이사기가 기여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치난 고등학교는 11명 전원이 함께 전국 출장을 목표로 하는 팀이다! 축구는 혼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 죄송합니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팀플레이로 이기는 것이, 이치난의 축구.
그리고 그것은 일본인다운 축구일지도 모른다.
「알면 됐다. 이사기, 너에게 기대하고 있다고!」
등을 두드려주며 감독은 떠나간다.
원 포 올, 올 포 원.
(나는 모두를 위해 플레이 해야해…….)
부실로 돌아오자 타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사기, 늦었잖아. 빨리 가자!」
타다를 비롯한 팀원들은 다들 좋은 녀석들이다.
분위기도 좋고, 시합에서도 이기고 있고, 열심히 하면 분명 전국을 노릴 수 있다.
(이걸로 괜찮아. 실제로 이렇게 팀이 이루어져 있어.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 나 혼자 조화를 깨뜨리면 안돼……분명.)
부훈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린다.
「원 포 올, 올 포 원…….」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입속으로 되뇌었다.
에고 봉인
그 날부터 이사기는 슛의 쾌감을 추구하는 마음…… 자신의 에고를 봉인했다.
(그치만 다들 의문을 품지 않아. 그러니 나도 감독의 말을 믿어보자.)
온화하고 성실한, 이사기 다운 선택이었다.
협조성이 쓸데없이 좋고, 팀원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강하다.
사춘기라 튀는 것도 싫고, 원래 겁이 많아서 자기주장을 했다가 미움받는게 무섭다.
축구로 변했던 이사기는 다시 축구에 의해 변해갔다.
사이타마 지역의 적수가 없는 중학생 스트라이커였던 자신감, 자신이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빛나던 모습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가 되어 월드컵에서 우승한다!」 라는 장대한 꿈을 품고 한걸음 씩 내딛었을 텐데.
뜨거운것을 느끼지 못했던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억누르듯, 불을 가라앉혀 나간다.
「나이스 패스, 이사기!」
「이사기, 정말 좋은 패스 타이밍이었어!」
그렇게 말해주면, 이 축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 그의 일상도 이사기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를들어…….
「이사기는 어떤 애를 좋아해?」
부활동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타다가 아이돌 그룹의 영상을 보여주며 물어본다.
「역시 센터인 이 아이지? 그치?」
솔직히 관심없다……고 생각 하지만, 그걸 말하지 못하는 것이 이사기다.
게다가 이사기가 좋아하는 이성의 타입은, 잘 웃고 웃는 얼굴이 예쁜 사람.
타다가 좋아하는 아이돌은 무표정 츤데레 계열이라 이사기의 지나치게 넓은 스트라이크존에서도 벗어나 있다.
하지만.
「아, 나도 이 아이 좋아해~♡」
「그치!」
친구들이 들떠있으면 이사기는 이렇게 말해버리고 만다.
「으,응……. 나도.」
뭐 싫어하진 않고.
「역시!? 이사기도 이런 타입 좋아하는구나!」
「응…….」
「그럼 다음에 다 같이 라이브 보러 갈래?」
「……응?」
「좋네! 다 같이 가자!」
「오오오ー!」
한껏 고조된 이치난 축구부.
「오,오ー……?」
완전히 휩쓸려버리고 만다.
만사가 이런식이라, 가라오케에 가면 타다와 중복된 곡 예약을 슬쩍 취소한다.
부활동이 끝나고 라멘 먹으러 가자고 하면 「어제도 먹었지만, 뭐 괜찮겠지…….」하고 함께 간다.
그리고 라멘집에서는 모두의 컵에 물을 따라준다.
물론 리필도 챙겨준다.
상냥하고 배려심이 깊은, 이치난 축구부의 소중한 동료 중 한 사람.
어느새 이사기는 화합을 소중히 여기는 원 오브 뎀이 되어 있었다.

결승 무대
그리고 맞이한 고2의 가을.
이사기는 스트라이커가 아닌, 어시스트로 팀에 공헌하고 있었다.
시야가 넓고, 공간 인식 능력이 뛰어나며, 축구 IQ가 높은 특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치난 축구부의 팀플레이 완성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팀은 순조롭게 현 대회에서 승리해 나갔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사이타마 현 대회의 결승전.
경기장 락커룸에서 감독이 목소리를 높인다.
목표인 전국대회까지 앞으로 하나. 단 한번만 더 이기면 전국이다.
「이기든 지든, 너희들은 내 자랑이다!」
시합전의 미팅. 여전히 감독은 뜨겁다.
「그저 이 찬스를 붙잡자! 다 같이 잡으러 간다면, 어떤 일이든 후회는 없어! 가자! 원 포 올, 올 포 원! 이치난 정신!!」
「오오오오!!」
락커룸에 이치난 축구부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오오오!!」
이사기도 같은 텐션으로 외치며, 기합을 넣는다.
(절대로 이기고 싶어……!)
앞으로 단 한 경기만 이기면 전국대회에 갈 수 있다.
결승 상대는 마츠카제코쿠오 고교로, 현내 굴지의 스트라이커, 키라 료스케라는 선수가 있다.
(나는 그 키라 료스케에게 이기고 전국에 가서……스카우트 되어 J리그에 가고……언젠가 일본 대표가……!! 꿈꿔왔던 월드컵에……──.)
무의식 중에 움켜쥔 주먹을 보며, 문득 깨닫는다.
(월드컵? 아직도…… 나는 이런걸 바라고 있었구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자신도 잊고 있던 그 꿈은 이사기의 마음 깊은 곳에 늘 있었던 것이다.
일본 대표가 되고 싶다.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싶다.
8살 때 노엘 노아를 처음 봤던 그날부터 계속 간직해온 꿈.
그 때, 예지와도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꿈이 이뤄진다면, 분명 이번 시합이 터닝포인트가 될 거야.)
어릴 적 하늘을 보고 비를 예측했던 것처럼 이사기는 자신의 미래가 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인생을 걸고 싸워야해!)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본심.
이사기는 오랜만에 자신의 에고의 목소리를 들었다.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계속 팀을 위해 싸워왔지만, 이 팀이 내 꿈을 이뤄주는건 아니야. 스트라이커라면, 이건 양보할 수 없어! 나에게 기회가 온다면……이 시합은 내 골로 이겨 보겠어!)
이사기는 고등학교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스스로 슛을 넣겠다고 결심했다.
결승전은, 예상대로 높은 평가를 받은 마츠카제코쿠오 고교의 리드로 진행되었다.
전반전에 키라 료스케에게 한 골을 내주며 경기는 0-1.
이치난은 조직적인 수비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었다.
시종일관 밀리는 분위기속에 결정적인 찬스가 오지 않는다.
공격도 하지 못한채 후반전에 들어서고, 시간은 점점 흘러간다.
그리고 후반전 막판, 드디어 이번 시합 첫 번째 찬스가 찾아왔다.
「가라 이사기! GO GO!」
「이번 플레이가, 라스트 찬스야!」
「이사기이이!」
벤치에서 터져나오는 기도하는 듯한 외침.
후반 40분, 공은 이사기가 잡고 있다.
추가 시간은 거의 없다.
(이기면 전국! 전국! 전국! 전국!! 내 골로 이겨 보겠어!)
이번 시합에서 겨우 찾아온 득점 찬스.
견디고, 달려서 이사기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낸 기회였다.
상대 팀 7번과 9번이 이사기를 쫓아온다.
옐로카드 직전, 9번이 이사기의 유니폼을 움켜 잡는다.
이사기는 힘차게 그 팔을 뿌리치고, 상대 진영으로 파고든다.
경이로운 집중력.
(이기면 전국!)
격렬한 페인트로 수비를 따돌리고 돌파한다.
(얕보지 마!)
왔다. 골이다.
(골키퍼와 1대1! 슛을 날린다! 슛을 날린다!)
적팀 골키퍼가 앞으로 튀어나온다.
(전!!국!!)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이사기의 눈엔 골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사기는 언젠가 느꼈던 뜨거운 감정을.
에고를 떠올리고 있었다.
(틀림없어. 이 시합이 나의 터닝포인트가 될 거야……!)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힘껏 발을 휘두르기만 하면──.
「이사기! 여기 프리!!」
「!?」
아군의 목소리가 이사기의 집중력을 뚝 끊어버렸다.
(아……타다 쨩…….)
순간, 성실하고 얌전한 평소의 이사기로 돌아가 버린다.
「확실히! 1점 만회하자!」
사이드에서 타다가 프리로 올라오고 있었다.
(확실히……패스 하면 1점이지…….)
골키퍼는 타다에게 반응하지 못했다.
그 위치라면 확실히 골을 넣을 수 있다.
「뭐하는 거야 이사기!! 여기서 넣지 못하면 끝이야!! 원 포 올, 한명은 모두를 위해! 올 포 원, 모두는 한명을 위해!」
감독의 노성이 날아온다.
(그래……축구는……11명이 하는 스포츠야……)
위험한 승부를 할 필요는 없다.
만약 그걸로 지면 내 탓이고, 팀원들에게 미안해져.
타다의 발 빝으로 절묘하게 패스를 건넨다.
완벽한 라스트 패스.
이사기에게 집중하고 있던 골키퍼는, 「아.」하고 의표를 찔려 자세가 무너진다.
(좋아! 이걸로 동점…….)
타다가 슛을 날렸다.
탕!
슛은 골포스트를 강하게 맞고 튕겨나왔다.
(거짓말!? 위험해!!!)
예상치 못한 슛 미스에, 이사기의 반응이 늦어진다.
「카운터다! 카운터!」
아까 이사기가 뿌리친 상대 7번이, 재빨리 볼을 주워낸다.
노 타임으로 롱패스를 날린다.
물론 그 앞에는…….
「뚫어! 키라!」
키라 료스케가 있었다.
공을 받은 키라가, 오니같은 드리블로 골문 안으로 파고든다.
수비를 뿌리치고, 그 기세를 몰아…….
슉!
공이 네트에 꽂힌다.
시합을 결정짓는 득점.
위기의 순간에 카운터 찬스를 살린, 관중들이 일제히 기립한 가운데 터진 압권골.
그리고…….
삐익!
0-2로,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패퇴
땅이 울리는 듯한 큰 함성과 승자의 우렁찬 포효.
카운터의 롱패스를 성공시킨 7번이, 키라를 안아올리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끝났다. 졌어.)
열광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는 키라를, 이사기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시합은 2-0으로 마츠카제코쿠오 고교가 승리해, 마츠카제코쿠오 고교의 전국대회 출장이 결정되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발표가 나오자 또다시 함성이 터진다. 검지를 하늘로 치켜들고 승리에 취해있는 그 중심에는 역시 키라가 있었다.
같은 경기장에서 이사기의 팀 동료들은 땅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결정적인 슛을 놓친 타다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미안 얘들아……내가 넣었다면……내가 넣었다면…….」
으아아아아, 하고 오열하는 타다에게 팀원들이 「타다 쨩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을 건넨다. 그렇게 말하는 녀석도 통곡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히어로 인터뷰.
「키라 선수에게 전국대회 출전은 그저 통과점이라고 생각하는데, U-18 대표팀 조기 소집에 대한 각오는?」
전국 대회 출전은 통과점. 여성 인터뷰어가 패배한 팀 앞에서 너무도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네요. 지금은 이 팀으로 전국대회 우승을 노릴 뿐입니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은 이 팀의 모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뿐입니다.」
대답하는 키라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짝이는 땀과 빛나는 하얀 치아, 상쾌한 이케멘의 모습에 여성 팬들이 꺄꺄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경기장 구석에서는……
「이치난 집합!」
감독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패배자들이 허리를 핀다.
「잘 싸웠다. 분하지만, 이것이 지금의 이치난의 실력이야. 3학년은 이걸로 은퇴구나……. 오늘로 축구를 그만두는 녀석도 있을지 모르지만, 팀으로 함께 싸웠던 날들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감독의 목소리가 점점 젖어든다.
「이 패배가 언젠가 너희 각자의 인생에서……흑……헛되지 않았다고……윽……느낄 날이 꼭 올거다……!」
코를 훌쩍이며 감정이 복받친 감독이 외쳤다.
「인생에 의미없는 일 따위 없어! 나에게 있어 이치난 축구부는!!」
선수들도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일본 제일의 팀이다!!!」
감독의 말과 선수들의 흐느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 사람, 냉정한 이사기가 있었다.
(……아니. 전국 대회에 한 걸음 모자랐던 팀일 뿐이다.)
이렇게 전국을 향한 도전은 끝이 났다.
시합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노을 지는 하늘 아래, 자전거를 끌며 제방길을 걷는다.
(나는 그 팀의 무명 2학년 포워드. 그게 현실…….)
강 건너로 해가 지고 있다.
(죄송합니다……. 노아님……. 나는 당신같은 영웅 선수, 슈퍼스타는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사기는 마음속의 노엘 노아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의 플레이에 매료되어, 단지 당신을 동경하여, 나는 계속 축구를 해왔습니다.)
현재의 노엘 노아는 프랑스 대표팀의 포워드이자, 31살의 올해 유럽 최우수 선수이다. 지금도 여전히 슈퍼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꿈은 꿈으로 끝나버릴 것 같아요. 언젠가 일본 대표팀의 에이스 스트라이커가 되어, 월드컵에서 우승하겠다는, 내 바보같은 꿈이…….)
월드컵 우승. 엄청난 환호성과 열광, 기쁨, 흩날리는 종이 조각. 그 중심엔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자신. 8살 때부터 품어온 장대한 꿈.
(아니, 애초에 지금 상태로는 프로조차 될 수 없겠지만…….)
키라 료스케의 눈부신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저런 녀석이 프로가 되는 걸까나. 같은 고2인데도 오공과 크리링 정도의 차이가 있어…… 고등학교 졸업까지 앞으로 1년…… 진심으로 축구를 한다면, 나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걸까…….)
눈을 감으면, 마지막 플레이가 눈앞에 떠오른다.
마츠카제코쿠오 고교의 골키퍼가 양팔을 벌린 채, 이사기를 노려보고 있다.
목숨을 걸고 골문을 지키고 있는, 그런 표정이다.
사이드로 아군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프리다. 패스를 주면 확실히 한 골.
하지만 이사기는, 망설임 없이 슛을 날린다.
코스는 아슬아슬, 설령 예측하더라도 손이 닿지 않을 사이드 아래.
슉!
공이 네트 구석에 꽂히며 동점 골이 들어간다.
그 순간, 이사기는 히어로 였다.
이를 악물고 아쉬워하는 골키퍼의 표정마저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다.
만약 그 장면에서 패스가 아닌 슛을 날렸다면……
(……내 운명은 바뀌었을까?)
오늘, 키라가 온몸으로 만끽한 승리의 쾌감은 전부 이사기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공허한 눈으로 석양이 완전히 진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아니……축구에서 만약이란 건 좋지 않아……. 팀플레이로 졌으니까…… 어쩔 수 없어……」
지나가던 초등학생들이 혼잣말을 하는 이사기를 보고 슬쩍 거리를 둔다.
「저 사람, 혼잣말 하고 있어…….」
「아마 위험한 사람일 거야.」
엄청나게 경계받고 있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니까……혼자선 이길 수 없고……원 포 올…….」
아무리 자신을 납득시키려 해도, 억누를 수 없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가둬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
절망이, 후회가, 분함이 밀려온다.
그때 슛을 날렸다면……!
갑자기 외치는 이사기에 놀란 초등학생들이「우와!! 도망쳐!」 하고 달려가기 시작한다.
「젠장…….」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흙의 색을 바꾸어 간다.
(이기고 싶었어…….)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다녀왔습니다ー.」
「어서와. 시합은 어땠어?」
현관문을 열자, 어머니가 평소처럼 웃으며 맞아준다.
「졌어 졌어 졌어. 배고파ー.」
「아쉽다! 오늘은 돈카츠 해놨는데!」
식탁에는 산더미 처럼 쌓인 돈카츠와 잘게 썬 양배추. 기다리지 못한 아버지는 벌써 젓가락을 들고 있다.
「이런건 보통 전날에 먹는거 잖아…….」
「그래? 맛은 있다구? 아빠도 엄마도 축구에는 관심 없으니까 잘 몰라서 미안해!」
이사기가 태클을 걸지만, 아버지도 어머니도 운동계 출신이 아니라 조금 엇나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패배가 분해도, 배는 고프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하며 어머니가 편지를 내밀었다.
「욧쨩 앞으로 편지 왔어. 일본 축구 연합이라는 곳에서!」
「에…….」
일본 축구 연합……? 이라는건 일본 축구계를 통괄하고 있는 곳이지?
무슨 용건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뭐라고 적혀 있어?」
「음ー? 소집?」
일본 축구 연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들 앞으로 온 편지에 관심이 있는 부모님도 함께 들여다 본다.
이사기 요이치님 강화 지정 선수로 선발되었습니다.
「강화 지정 선수……?」
이사기가 침을 꿀꺽 삼킨다.
「일단 좋은 일이지?」
「모르겠어.」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아버지가 적당히 대답한다.
부모님은 너무 태평해서,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고 있다.
일본 축구 연합에서 직접 보내온 초청.
시합에서 지고, 전국에 한 걸음 모자랐던, 이 날에.
(왜 내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꿈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집의 이유
(오늘은 컵라면……)
모니터실에는 빈 컵라면 용기가 여러개 방치되어 있었다.
정크를 좋아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
눈 밑에 항상 짙은 다크서클이 있는것도, 성냥개비처럼 마른 몸도, 전부 식습관 때문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안리는 컵라면에서 다시 일로 의식을 돌렸다.
에고와 안리는, 모니터로 사이타마현 대회 결승전 경기영상을 보고 있었다.
다이제스트 영상에서는, 멋진 카운터 축구로, 눈부신 슛을 넣는 키라 료스케.
에고가 그 자리에서 초빙을 결정하고, 안리는 키라의 데이터에 「초빙」을 체크한다.
이치난의 수비를 걷어내고 슛을 성공시키는, 이것이 바로 스트라이커라는 플레이.
키라, 흠잡을 데 없는 소집 대상이었다.
(……그건 그렇고.)
에고가 선택한 이사기 요이치는, 안리가 상상했던 전개로 패배했다.
자신이 만든 찬스를 손쉽게 팀원에게 넘기고, 카운터를 허용해 자멸.
조직력을 중시하는 일본식 축구를 상징하는 듯한 플레이였고, 패배를 통해 그 한계를 스스로 보여준 셈이었다.
안리는 의문을 품는다.
(이사기 요이치에게 강화 지정 선수 통보…… "푸른 감옥" 의 초대장을 보낸 것은 괜찮은걸까? 역시 잘못 보낸게 아닐까…….)
안리의 꿈은 일본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일본 축구는 지난 25년간 성장해 월드컵 출전 단골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16강이 일본의 한계.
「우리만의 축구를 하면 이길 수 있다.」
「일본의 패스 축구는 세계에서도 통한다.」
축구 해설자들은 다들 그렇게 말한다.
(그런 말만 하니까 언제까지나 16강에 머물러 있는 거야!)
뇌 속의 안리가 화를 낸다. 일본 축구의 미래를 생각하면, 안리는 조금 말투가 거칠어진다.
이대로라면 일본 축구는 영원히 월드컵 우승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지금의 일본 축구를 박살내고, 이 나라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 구세주 플레이어…… 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를 탄생시켜야 한다.
스트라이커 300명의 인선도 에고의 독단과 편견에 맡겨졌다.
하지만, 역시 이 아이는 아니잖아? 라고 안리는 생각한다.
그런데도 경기장에 주저앉은 이사기의 영상을 보면서 에고는 섬뜩한 웃음을 짓고 있다.
「아ー아ー. 이 녀석 최악이었지, 안리 쨩.」
「네. 이번 시합, 이치난 고교는 0-2로 마츠카게코쿠오 고교에 패했습니다. 이사기 요이치는…… 아무것도 못하고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지난번에, 이 아이는 안된다고 말 했잖아.
하지만, 에고는 더욱더 입꼬리를 올린다.
「좋아……. 최악이라 최고다……. 압도적인 플레이 시야. 공간 인식 능력. 주변 선수들과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시야와 높은 축구 IQ. 그 재능을 전부 팀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스트라이커로서의 가능성을 죽여버린 인재…….」
에고는 안경을 밀어올리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일본 축구가 죽이고,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채 사라져간다. 이런 인간의 에고야 말로 "푸른 감옥"의 보물이 된다.」